놀이와 생활 속 아이의 성장

“엄마,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요” 만 5세 아이가 생명의 의미를 알아간 시간

마음안내 2026. 7. 3. 15:44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건넨 한마디가 우리 가족의 식탁을 바꾸어 놓았다.

“엄마,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요.”

나는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이 있었니?”

딸이 대답했다.

“엄마, 동물들이 너무 불쌍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동물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집에 있던 동물 관련 책을 유치원에 가져가기도 했다.

그동안 딸에게 동물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먹는 음식과 동물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다른 방으로 가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그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셨다.

 

동물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고기와 소시지, 털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딸이 물었다고 했다.

“어떻게요? 죽어서요?”

선생님이 설명을 이어가자 갑자기 아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딸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었다.

아이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이 어린 마음에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엄마,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요” 만 5세 아이가 생명의 의미를 알아간 시간
“엄마,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요” 만 5세 아이가 생명의 의미를 알아간 시간

좋아하던 고기도 먹지 않았던 아이

그날 이후 딸은 정말 고기를 먹지 않았다.

좋아하던 불고기도 먹지 않았고, 삼겹살구이도 닭고기도 먹지 않았다. 식탁에 고기 반찬이 올라오면 손을 대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에 나물과 김치만 먹는 딸을 보며 선생님의 걱정도 커졌다.

부모인 우리도 고민이 많았다.

 

아이의 마음을 무시하고 “고기도 먹어야지”라고 억지로 먹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성장하는 아이가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물이 불쌍해서 먹기 싫구나.”

그 마음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고기를 먹지 않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두부와 콩밥을 식탁에 올리고, 콩으로 만든 음식도 함께 먹었다. 견과류를 이용한 음식도 만들어 보았다.

단순히 “고기 대신 이것을 먹어”라고 말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음식 자체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었다.

 

두부를 직접 잘라보기도 하고, 콩꼬투리를 까보기도 했다. 견과류를 넣어 샐러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음식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아이의 마음을 가장 먼저 존중해 준 아빠

특히 아빠는 딸의 마음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다.

“우리 딸은 정말 마음이 예쁜 아이야. 어떻게 이런 아이가 우리 딸일까?”

아빠의 말을 들으며 딸의 표정이 환해지곤 했다.

 

주말이면 아빠는 딸과 함께 서점에 갔다.

동물책도 보고 요리책도 보고 공주책도 보았다. 꼭 필요한 책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 딸과 함께 책장을 천천히 둘러보는 시간 자체를 즐겼다.

 

그때 우리 부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이에게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어른에게는 당연한 식탁의 음식 하나가 아이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미를 통해 자연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다

어느 날 서점에 갔던 딸이 한 권의 책을 들고 왔다.

『거미가 줄을 타고』라는 책이었다.

딸은 그 책을 매일 보고 또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엄마. 거미가 거미줄을 열심히 쳐서 걸린 애들을 잡아먹어. 그런데 거미는 나쁜 게 아니야.”

나는 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왜 나쁜 게 아니야?”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아기들을 엄청 사랑하거든.”

 

딸은 거미가 먹이를 잡는 모습뿐 아니라 새끼를 돌보는 모습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거미가 모기나 파리를 먹어주기도 한다고 하더라.”

“맞아. 거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힘들어질 수도 있대.”

 

조금 전까지 딸에게 동물의 죽음은 슬프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여러 생물의 모습을 알아가면서 자연에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에는 또 다른 책을 읽다가 이런 말을 했다.

“동물들은 정말 고마워. 죽어서 사람들을 튼튼하게 해주는 음식이 되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

 

처음에는 “동물이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했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과 음식의 관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이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준 것은 아니었다.

아이와 책을 읽고, 아이의 질문을 듣고, 함께 이야기했을 뿐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동안에도 식탁은 즐거워야 했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해서 식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성장기 아이에게는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동안에도 다양한 식품을 골고루 먹도록 신경 썼다.

 

두부, 콩, 콩밥, 견과류 등 평소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활용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음식만으로 영양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식탁에 올리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두부를 만져보고 자르고, 콩꼬투리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콩을 살펴보았다. 견과류를 직접 넣어 샐러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고기를 대신할 음식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먹는 음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콩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가 먹는 것은 누군가가 기르고 준비한 것이구나.’

아이에게 음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다만 아이가 특정 식품을 장기간 제한하거나 식사가 지나치게 편중되는 경우에는 성장 상태와 식사 내용을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는 것과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살피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요” 만 5세 아이가 생명의 의미를 알아간 시간
“엄마,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요” 만 5세 아이가 생명의 의미를 알아간 시간

2년이 지나고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약 2년 정도가 지난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무렵이었다.

딸이 조금씩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도 우리는 특별한 일을 만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고기를 많이 먹게 하지 않았다. 딸에게 양해를 구하고 야채 빈대떡에 아주 조금 넣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조금 넣기도 했다. 카레에 넣어 함께 먹기도 했다.

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만큼 천천히 식탁에 다시 올렸다.

 

우리는 딸에게 무엇을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마다 가족이 함께 했던 말이 있었다.

“이거 먹고 우리도 좋은 일 하며 살자.”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도 다른 생명과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가자는 의미였다.

아이의 질문을 문제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른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질문이나 행동을 만날 때가 있다.

“왜 고기를 먹어야 해요?”

“동물은 죽으면 어떻게 돼요?”

“왜 거미는 벌레를 먹어요?”

“사람은 왜 동물을 먹어요?”

 

어른에게는 이미 익숙한 세상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처음 만나는 커다란 질문일 수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딸이 고기를 먹지 않는 상황이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 시기에 아이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정답을 빨리 알려주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질문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동물이 불쌍하게 느껴졌구나.”

“그런데 자연에서는 여러 생물이 서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가기도 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넓혀간다.

 

처음의 생각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의 생각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질문하고, 또 다른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모든 선택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다

현아와 함께 지내면서 부모인 우리도 배운 것이 많았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그대로 받아주는 것과는 달랐다.

 

아이의 마음은 존중하되 성장에 필요한 것은 살펴야 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물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책과 대화를 통해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알아가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가 시간이 지나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을 때도 그것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기다렸다.

만 5세 아이에게서 배운 가장 소중한 것

돌이켜보면 딸이 고기를 먹지 않았던 약 2년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꽤 특별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고기를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성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유치원에서는 식사를 어떻게 하지?’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에게는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마음이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함부로 꺾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범위 안에서 생각을 넓혀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현아가 처음 “동물들이 너무 불쌍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 마음을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을 때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생각은 경험을 통해 계속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질문을 던질 때 그 옆에 함께 앉아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동물이 불쌍해.”

 

그 한마디로 시작했던 딸의 질문은 우리 가족에게 생명과 음식, 자연과 감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긴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가끔 그때의 말을 떠올린다.

 

“이거 먹고 우리도 좋은 일 하며 살자.”

어린 딸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이 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식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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