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윤영이가 요즘 매일 주호가 괴롭혔다고 해요. 바쁘시겠지만 잘 살펴봐 주세요.”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도, 교사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 2세 아이가 말하는 ‘괴롭혀요’가 어른이 생각하는 의미와 전혀 다를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실제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한 사례를 통해 만 2세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리고 아이의 말을 들을 때 어른이 무엇을 살펴보면 좋은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주호가 자꾸 괴롭혀요” 선생님도 의아했던 이유
등원 시간에 만난 윤영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원장님, 윤영이가 요즘 매일 주호가 괴롭혔다고 해요. 바쁘시겠지만 잘 살펴봐 주세요.”
담임선생님은 조금 의아했습니다.
평소 교실에서 두 아이가 크게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보지 못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어 그날부터 두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윤영이는 책 보기와 퍼즐 놀이, 인형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기 놀이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반면 주호는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좋아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거나 공을 가지고 놀고, 교실 안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놀이 성향이 워낙 달랐기 때문에 같은 놀잇감을 가지고 가까이에서 노는 시간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원 시간이 지나고 또 윤영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원장님, 오늘도 주호가 괴롭혔대요. 혹시 선생님이 못 보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담임선생님도 난감했습니다.
“정말 이상하네요. 오늘 하루 종일 살펴봤는데 특별한 일이 없었거든요.”
직접 관찰해도 보이지 않았던 ‘괴롭힘’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저도 직접 교실에서 아이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만 2세반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하며 두 아이의 모습을 하루 동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역시 주호가 윤영이를 괴롭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둘이 크게 다투지도 않았고, 주호가 윤영이의 놀잇감을 빼앗거나 밀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윤영이 엄마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도 주호가 괴롭혔대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윤영이가 어떻게 괴롭혔다고 하던가요?”
그러자 엄마도 난처한 듯 대답했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주호가 자꾸 괴롭혔다고만 해요.”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윤영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상황을 놓친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아이가 말하는 ‘괴롭힌다’는 무슨 뜻일까?

“동화 들을 때 돌아다녀”
다음날 윤영이와 함께 놀이하면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윤영아, 주호가 너를 괴롭히니?”
윤영이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랬구나. 윤영아, 주호가 어떻게 괴롭혀?”
잠시 생각하던 윤영이가 말했습니다.
“동화~ 들을 때 돌아다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상황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주호는 선생님이 동화책을 읽어줄 때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동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교실을 조금씩 돌아다녔습니다. 놀잇감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선생님 뒤쪽으로 가서 옷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반면 윤영이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되면 아주 집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바라보고, 선생님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윤영이에게 주호의 움직임은 상당히 신경 쓰이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윤영이에게 ‘괴롭힌다’는 말은 어른이 생각하는 ‘친구를 괴롭힌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동화를 듣고 있는데 옆에서 계속 움직여서 싫어요.”
어쩌면 이런 마음에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동화 들을 때 주호가 돌아다녀서 싫은 거야?”
윤영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제야 ‘괴롭혀요’라는 한마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만 2세 아이는 왜 다른 단어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까요?
만 2세 무렵에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이 빠르게 늘어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좋고 싫은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울거나 손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표현했던 것을 이제는 말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아이가 알고 있는 단어가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느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른에게는 ‘방해한다’, ‘신경 쓰인다’, ‘싫다’, ‘집중하기 어렵다’처럼 여러 가지로 나누어 표현할 수 있는 상황도 아이에게는 모두 ‘괴롭혀’라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가 일부러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느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를 이용해 최대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친구가 나를 괴롭혔어”라고 말했을 때 바로 어른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친구가 뭘 해서 싫었어?”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아이가 말하고 싶었던 진짜 상황을 조금씩 알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말과 실제 상황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말을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윤영이가 “주호가 괴롭혀요”라고 말한 것은 분명 윤영이에게 불편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그 불편함의 원인이 우리가 생각했던 ‘친구의 괴롭힘’과 달랐던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아이의 말을 듣는 것과 실제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 함께 필요합니다.
만약 아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호를 ‘윤영이를 괴롭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로 오해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선생님이 아무리 봐도 그런 일이 없는데?”라고만 생각했다면 윤영이가 느끼고 있던 불편함을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말을 들을 때는 아이의 표현은 존중하면서도, 그 말이 실제로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천천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작은 실험으로 확인해 본 결과
우리는 다음날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주호에게 텃밭에서 방울토마토 따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주호는 신이 나서 저와 함께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동안 담임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과연 오늘 윤영이는 어떻게 말할까요?
하원하고 난 후 윤영이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오늘 윤영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엄마가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안 괴롭혔대요.”
그 말을 듣고 선생님들과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주호가 없었던 그날에는 윤영이가 동화를 듣는 데 방해받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알 수 없었던 ‘괴롭혀요’라는 말의 의미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이해되었습니다.
아이의 “싫어” 속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이런 상황은 만 2세 아이들에게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감정을 세세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친구가 내 놀이를 방해해서 속상해.”
“내가 집중하고 있는데 친구가 움직여서 신경 쓰여.”
“친구가 내 가까이에 오는 게 싫어.”
어른이라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싫어”, “안 해”, “뺏었어”, “괴롭혀”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말로 표현하게 됩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말을 틀렸다고 바로 고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랬구나. 많이 싫었구나.”
그다음에
“친구가 네가 동화를 듣는데 계속 돌아다녀서 싫었던 거야?”
처럼 어른이 상황을 조금 더 정확한 말로 정리해 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갑니다.
부모와 교사가 기억하면 좋은 한 가지
아이의 말이 어른이 생각하는 의미와 다르다고 해서 그 말을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은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알려주기 위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친구가 괴롭혀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바로 누가 잘못했는지를 판단하기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래?”
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실제 놀이 상황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함께 보면 어른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윤영이의 “주호가 괴롭혀요”라는 말은 처음에는 친구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다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보고 실제 상황을 살펴보니 그 말의 의미는 전혀 달랐습니다.
윤영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화 시간에 주호가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만 2세 아이에게는 이것을 설명할 적절한 말이 아직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던 ‘괴롭혀’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아이의 말은 때로 어른의 말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말을 틀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아이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한마디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순간 느꼈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이 조금만 천천히 듣고,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 준다면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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