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
대신 싸웠다.
밤 11시, 거실에는 남편과 내가 각각 다른 곳에 있었다. 남편은 소파 한쪽 끝에 앉아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언제부터인지 그것이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결혼 전에는 남편의 자신감 있는 말투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기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 대화는 쉽게 언쟁이 되었고, 서로의 말을 듣기보다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졌다.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고 했다.
그렇게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싸움만 남았다.

아이가 아픈 날, 나는 정말 혼자라고 느꼈다
어느 날 오후 2시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린이집이었다.
"네? 우진이가요?"
"네, 어머니. 우진이가 오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38.5도 정도 됩니다.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급하게 가방을 챙겼다.
그날은 시터 아주머니가 오지 못하는 날이었다. 마침 남편이 반차를 낸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린이집에서 전화 왔는데 우진이가 열이 난대. 38.5도래. 당신 오늘 반차 낸다고 했잖아. 우진이 데리고 병원에 가줄 수 있어?"
잠시 후 남편의 대답이 들렸다.
"아, 그런 건 엄마가 해야지. 나 지금 가기 힘들어. 오늘 모처럼 낚시하려고 일찍 나온 거야. 약속도 잡아놨는데 어떻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도 싸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비슷한 문제로 부딪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단순히 남편이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혼자라고 느꼈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순간에 나만 모든 책임을 떠안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화부터 냈던 것이다.
시어머니 전화 한 통에 또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주말 아침이었다.
남편이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더니 나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 좀 드려. 며느리가 좀 싹싹하게 해드려야 좋아하시지."
순간 마음이 답답해졌다.
"본인이 직접 해. 왜 자기 효도를 나를 통해서 하려고 해? 당신은 우리 아빠한테 전화 얼마나 드리는데?"
남편도 지지 않았다.
"며느리랑 사위가 같냐? 우리 엄마는 며느리 전화 기다리신단 말이야. 우진이 궁금해하시고."
그 말에 결국 참았던 감정이 터졌다.
"직장에, 아이에, 살림에, 어머니 궁금증 풀어드리는 일까지 왜 내가 다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커졌다.
남편의 표정도 굳어졌다.
우리는 또 싸웠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아들 우진이었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부부가 싸우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 아이였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이혼을 검색했다
그날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고, 침실에서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휴대폰을 켰다.
검색창에 '이혼 절차'라고 입력했다.
한참 바라보다가 지웠다.
그리고 다시 입력했다.
그날 밤 나는 이혼을 생각했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려고 하기보다 내가 왜 옳은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 전에 변명부터 하고 있었다.
'당신이 잘못했어.'
'아니야. 당신이 잘못했어.'
그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나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우진이의 등원 준비를 하면서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빨개졌다.
우진이가 물었다.
"엄마, 왜 울어?"
"엄마가 피곤해서."
하지만 아이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화가 나면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어."
우진이는 손을 턱 밑에 대고 가슴 아래쪽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
다시 손을 움직였다.
"둘."
그렇게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셋, 넷, 다섯..."
나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열까지 천천히 세었다.
"엄마도 해 봐. 같이 해."
나는 우진이의 동작을 따라 했다.
"하나, 둘, 셋..."
아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넷, 다섯, 여섯..."
우리는 함께 열까지 셌다.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돌봐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남편도, 친구도, 부모님도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내 아이였다.

"열까지 세고 나서 속상한 걸 말하는 거야"
우진이가 다시 말했다.
"엄마, 이렇게 열 번 하고 나서 내가 속상한 것을 말하래."
"뭐라고 말해?"
"나는 무엇무엇 때문에 속상해, 이렇게."
아이의 설명은 간단했다.
화가 난 순간 바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 다음, 내가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진이는 한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사과도 해야 해."
"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용기 있는 거래."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어른인 나는 아이에게 감정을 조절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 감정은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설명하기보다 화를 냈고, 상처를 받았다는 말 대신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멈추고, 숨을 고르고, 말하기. 그리고 잘못했다면 사과하기.
처음으로 남편에게 내 감정을 설명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좀 얘기해도 돼?"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 마주 앉았지만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우진이가 알려준 것을 떠올렸다.
하나.
둘.
셋.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나는 속상했어."
남편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진이가 아팠을 때 당신이 낚시 약속을 우선한 게 속상했어. 그때 내가 느낀 건 내가 혼자라는 거였어."
이번에는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내가 느낀 것을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당신이 자기 일을 미루지 않으려고 나한테 모든 걸 감당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외로웠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시어머니 이야기도 꺼냈다.
"어머니 이야기도 힘들었어. 나는 원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닌데 자꾸 어머니가 궁금해하시는 것을 내가 다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어."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좋은 며느리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힘들었어. 그러다 보니 나는 좋은 며느리가 못 되는 사람인가 싶어서 더 속상했어."
남편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한참 있다가 남편이 말했다.
"나는 몰랐어. 네가 그렇게 외롭다고 느끼는 줄."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엄마랑 자주 통화하면 서로 친해질 줄 알았어. 미안해."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다가왔다.
남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완전히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고 했다.
그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시작이었다.

싸우지 않는 부부가 아니라, 싸운 뒤 다시 이야기하는 부부
그 후 우리 부부가 갑자기 사이좋은 부부가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의견이 맞지 않는 날이 있었다.
때로는 다시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달라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예전에는 한 번 화가 나면 끝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멈추려고 했다.
숨을 고르고,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했다.
"당신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난 거야."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우리는 싸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방식을 바꾸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에게도 내 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주말 시부모님 댁에 갔을 때였다.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진 애미야, 요즘 바쁘니? 가끔 너희 식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좀 전해주면 좋겠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먼저 불편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나를 힘들게 하려고 하시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어머니는 가족의 소식이 궁금하신 거구나.'
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원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세히 설명하는 걸 좀 어려워해요. 그런데 어머니가 궁금해하시는 건 알아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우진이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시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셨다.
"그래? 그럼 고맙지."
그 말을 듣고 나도 조금 편해졌다.
그때 알았다.
상대방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나의 어려움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마음도 인정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배운 것은 단순한 숫자 세기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진이가 알려준 것은 단순히 열까지 세는 방법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하나의 감정 조절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것이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화가 난 순간 바로 말하지 않고 잠시 멈추는 것.
내가 무엇 때문에 속상한지 생각해 보는 것.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내 감정을 설명하는 것.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면 사과하는 것.
이 네 가지는 특별한 기술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쉽지 않다.
화가 나면 바로 말하고 싶고,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멈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 앞에서 부부가 싸웠다면 아이에게도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가 변화하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부부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싸움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싸운 뒤에는 아이에게도 간단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화가 났어."
"그래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
"우진이 때문이 아니야."
아이에게 부모의 갈등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부모가 서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에게는 하나의 배움이 될 수 있다.
"아빠가 아까 큰소리 내서 미안해."
"엄마도 화내면서 말해서 미안해."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가르치는 것만큼, 부모가 직접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지금도 연습하고 있는 세 가지
우리 가족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을 정리하면 아주 단순하다.
첫째, 화가 나면 잠시 멈추기
당장 결론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숨을 고르고 숫자를 천천히 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상대의 잘못보다 내 마음을 먼저 말하기
"당신은 왜 늘 그래?"
보다는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상했어."
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말하는 방식 하나가 대화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셋째, 잘못했다면 사과하기
사과는 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관계를 다시 이어가기 위한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의견이 다를 때도 있고, 서로 서운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제는 싸움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아주 작은 행동이 있다.
멈추기.
숨 고르기.
그리고 말하기.
어쩌면 관계를 바꾸는 것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이기는 말보다 내가 느낀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
우리 가족에게는 그것이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우진이는 부모의 갈등을 해결해 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을 엄마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작은 가르침이 우리 부부에게는 큰 계기가 되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늘 어른에서 아이로 향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아이가 어른에게도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우리 가족에게 우진이가 알려준 것은 화가 날 때 바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잠시 멈추는 법, 그리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법이었다.
결혼 생활이란 어쩌면 완벽하게 맞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계속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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