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 말도 잘 듣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데, 집에만 오면 떼를 쓰고 정리도 하지 않으며 부모가 몇 번씩 이야기해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어린이집에서는 잘한다는데 집에서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과 집에서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은 만 3세 딸을 둔 어머니의 '이중인격'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아이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와 그 모습을 집에서도 부드럽게 이어가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이중인격 같아요' — 4월 학부모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
4월 학부모 상담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만 3세 민선이의 어머니가 담임교사와의 상담을 마친 뒤 원장실로 들어오시더니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원장님, 우리 딸은 이중인격을 가진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서는 정리도 제일 먼저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다네요. 저는 정말 배신감을 느낀다니까요. 집에서는 정리를 정말 안 해요. 장난감을 몽땅 버려버릴까도 생각했다니까요."
저는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이상하네요. 민선이는 원에서 정리대장인데요.' 그러면서 어린이집에서 민선이가 어떻게 정리하는지 하나씩 설명해 드렸습니다.
어린이집과 가정은 아이에게 서로 다른 생활공간입니다. 함께 지내는 사람도 다르고, 하루의 흐름도 다르며, 어른들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행동도 조금씩 다릅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아이에게 그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행동은 환경이 절반입니다 — 정리대장의 비밀
어린이집에서 정리시간이 되었다고 교사가 '정리하세요'라고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정리하기 쉬운 환경을 먼저 만들어 줍니다. 바구니에 사진을 붙여 무엇을 어디에 넣는지 알 수 있게 하고, 교구장과 바구니의 색상을 맞춰 찾기 쉽게 합니다.
만 3세는 글자를 읽지 못해도 사진과 색을 보며 '이건 여기 넣는 거구나'라고 알아갑니다. 놀잇감을 한꺼번에 많이 꺼내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놀잇감이 지나치게 많으면 선택의 기회가 많아 보이지만, 오히려 무엇을 가지고 놀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탐색할 정도만 제공하고, 흥미가 줄어들 때 새 놀잇감으로 바꾸어 줍니다. 가정환경이 유아의 자기조절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내 연구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훈육 방식이 아니라 아이가 행동하기 쉽게 준비되어 있는 조건입니다. 정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가 생활습관을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갑작스러운 지시 대신, 5분 전에 알려주기
정리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이제 정리해!'라고 하지 않고 5분 정도 전에 미리 알려줍니다.
'시계 바늘이 이만큼 가면 정리할 거예요.' 아이들은 놀던 것을 갑자기 멈추는 것보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미리 알고 있을 때 행동을 바꾸기가 수월합니다. 정리시간이 되면 교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행동을 걸어 줍니다.
"○○가 퍼즐을 정리하고 있구나." "○○는 스카프 정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구나." "앗! 여기 인형이 울고 있네. 어쩌지?"
'인형이 울고 있다'고 하면 아이들은 웃으면서 인형을 찾아 정리합니다. 모든 아이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리하지는 않습니다. 정리를 하다가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아이들은 조금씩 정리시간을 인식하고 방법을 익혀갑니다. 정리가 끝나면 함께 교실을 바라보며 '우리 반 교실을 우리가 정리했네.', '정말 깨끗해졌구나, 우리 정말 멋진 어린이들이야.'라고 마무리하고 즐겁게 다음 활동으로 넘어갑니다. 민선이는 이런 과정의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대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어린이집에서의 방법 | 집에서는 이렇게 |
|---|---|
| 바구니에 사진 라벨·색상 맞추기 | 장난감 통에 사진이나 스티커를 붙이고 정리 위치를 한곳으로 고정하기 |
| 적정량의 놀잇감만 제공 | 모두 꺼내 주기보다 몇 가지씩 돌아가며 제공하기 |
| 5분 전 예고 | '이 노래가 끝나면 정리 시작'처럼 예측 가능한 신호로 알려주기 |
| 과정 중 구체적으로 말 걸어 주기 | '블록이 바구니에 들어갔네'처럼 행동 그 자체를 짚어 주기 |
| 마무리에 성과 인정 | '네가 정리한 덕에 거실이 깨끗해졌다'고 돌려주기 |
선생님 말은 잘 듣는데 엄마 말은 안 듣는 이유
민선이 어머니가 가장 궁금해했던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데 왜 제 말은 안 들을까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선생님이 좋아하실 거야.'라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여러 번 듣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선생님의 말은 아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정리하자'고 하면 열심히 정리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엄마가 같은 말을 하면 '싫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엄마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엄마는 아이가 가장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대상입니다. 애착 연구에서는 부모를 아이의 '안전기지'라고 부르는데, 아이는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서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굳이 애써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울고 떼를 써도 결국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의젓하던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갑자기 아기처럼 행동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편안함은 허용이 아닙니다 — 부모도 존중받는 사람
아이에게 부모가 편안한 존재라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하지만 편안함과 모든 행동의 허용은 다릅니다. 엄마와 아빠에게도 지켜야 할 예절과 생활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 엄마가 이야기할 때는 잠깐 멈추고 들어보자
- 물건을 줄 때는 던지지 말고 손으로 건네주자
- 도와주었을 때는 고맙다고 말해보자
- 속상한 일이 있어도 소리를 지르지는 않기로 하자
양육 연구들은 명확한 기준과 따뜻한 반응을 함께 두는 태도가 아이의 발달에 가장 긍정적이라고 정리합니다.
부모가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부터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엄마 말이니까 무조건 들어야 해'라는 경험보다 '나도 엄마 아빠를 존중하고, 엄마 아빠도 나를 존중한다'는 경험이 아이에게 필요합니다.
부모와 교사가 공유하면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집니다
민선이처럼 집에서만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에게 '왜 너는 집에서만 그러니?'라고 묻기보다, 어린이집에서 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하기 쉬운 환경이 있었는지, 놀잇감이 너무 많지는 않았는지, 정리할 시간을 미리 알려주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같은 유아를 교사와 부모가 다르게 평가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시선이 다른 만큼, 부모가 어린이집의 방식을 공유받고 가정의 어려움을 교사에게 이야기해 주면 교사는 아이의 모습을 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고, 부모는 집에서 시도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집에서 오늘부터 시도할 수 있는 것을 정리했습니다.
- 놀잇감은 몇 가지씩만 꺼내 두었나요
- 정리 위치를 사진·스티커로 알려주었나요
- 정리 5분 전에 예고 신호를 정했나요
- 정리하는 동안 행동을 그때그때 말로 짚어 주었나요
- 끝나면 아이의 성과를 아이에게 돌려주었나요
- '집에서만 그런다'고 아이를 나쁜 아이로 보지는 않았나요
두 곳의 아이는 한 아이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의젓한데 집에서는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혹시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 차이 속에는 아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편안함도 있고, 환경의 차이도 있으며, 어른들의 기대와 지도 방식의 차이도 있습니다. 부모가 할 일은 어린이집과 똑같은 아이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바꾸기 전에 환경을 바꾸고, 행동을 혼내기 전에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엄마와 아빠 역시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입니다.
민선이 어머니에게 '민선이가 어린이집에서는 정리대장이에요'라고 전해드리면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이집의 아이와 집의 아이는 서로 다른 아이가 아닙니다. 두 곳에서 모두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는 한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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