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생활하다 보면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못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못하겠어"라고 하거나, 퍼즐을 맞추다가 "나는 못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부모는 이런 말을 들으면 걱정이 됩니다.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할까?" "자신감이 없는 걸까?" 그래서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해봐"라고 격려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반복해서 "나는 못해"라고 말한다면, 그 말 뒤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 3세 혜린이의 사례로 그 방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나는 못해요"를 자주 말하던 혜린이
혜린이는 밝고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아주 잘했는데, 놀이를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나는 못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어느 날 퍼즐을 꺼내놓고 조각을 한참 살펴보더니 교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 못하겠다."
친구들이 그림을 그릴 때는 빈 종이와 색연필을 내밀며 꽃을 그려달라고 했고, 정해진 방법이 없는 자유로운 블록놀이에서도 "나는 못하겠어"라며 친구들이 만든 것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운 놀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 "잘 안 돼?", "같이 해볼까?" 하며 여러 번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혜린이는 도움을 받아도 스스로 시작하기보다 교사가 해주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혜린이는 정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못해"가 하는 일 — 실수를 미리 막는 자기 보호
시작하기도 전에 나오는 "못해"에는 대개 비슷한 마음이 있습니다. 해보기 전에 실패의 상처를 미리 막으려고 그 말을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존감을 지키려고 도전을 피하는 이런 방식을 실패 회피라고 부르는데, 결국 "나는 못해"는 능력의 보고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앞세운 자기 보호일 수 있습니다.
| "나는 못해" 뒤의 마음 | 아이의 모습 | 도움이 되는 반응 |
|---|---|---|
| 정말 방법을 모른다 |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 한 단계만 시범 보이고 아이가 이어서 하게 함 |
| 실수가 두려워 시작을 미룬다 | 해보기도 전에 미리 "못하겠어"라고 말한다 | "실수해도 다시 하면 돼"라고 안심시키고 활동을 작은 단계로 쪼개 줌 |
| 도움을 청하는 신호 | 어른 곁에 가까이 오면서 "못해요"라고 말한다 | 대신 해주지 말고 "어디부터 같이 해볼까?"로 함께 시작 |
한 가지 덧붙이면, 혜린이가 해주기를 기다린 것은 아이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제 도움의 상당 부분이 '대신 해주기'에 가까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선의가 반복되면 아이는 '혼자 하면 실패하고, 어른이 해주면 잘 된다'는 경험을 쌓고 노력을 먼저 접어버리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부르고 어른의 과도한 도움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때의 제 도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잘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았습니다
혜린이를 지켜보니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놀이는 소꿉놀이였습니다.
인형을 재우고 안아주고 음식을 먹이는 놀이에서는 "나는 못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자신의 생각대로 놀이를 자연스럽게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을 연습시키기보다 잘하는 놀이에서 자신감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소꿉놀이를 하며 말했습니다. "혜린이가 아기를 참 잘 돌보는구나. 그래서 아기가 잘 자네." 혜린이는 쑥스러운 듯 웃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기를 잘 돌봤는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고 익숙한 놀이에서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자기효능감)을 키우는 여러 통로 가운데 직접 해보고 성공해 본 경험이 가장 강력하다고 설명합니다.
가정에서도 아이가 좋아하는 역할놀이, 신체놀이, 만들기 등에서 자신 있는 모습을 먼저 찾아주세요. "네가 이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네가 생각한 대로 해보니까 재미있지?" 같은 말도 좋습니다.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점토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조금씩 떼어 그릇에 담으며 맛있는 요리라고 이야기했고, 며칠 동안 함께 놀자 혜린이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혜린이가 스스로 점토를 떼어 그릇에 담았습니다. "어머나, 혜린이가 요리를 잘하네. 와, 맛있다. 꼭 엄마 같아." 혜린이는 웃었습니다.
아이의 자신감은 거창한 칭찬 한마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고 인정받는 작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자랍니다. 이때 칭찬 방법도 결과를 좌우합니다.
"똑똑해"처럼 아이 그 자체를 칭찬하면 실패했을 때 상처가 커져 시도를 피하게 되고, "네가 직접 해봤네"처럼 과정을 짚어주면 어려움 앞에서도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이가 성공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세요
블록놀이를 어려워하는 혜린이에게 자석 블록을 준비했습니다. 가까이 가져가기만 해도 척척 붙는 놀잇감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변화였지만, 그날부터 혜린이는 매일 가장 일찍 등원해 자석 블록을 찾았고, 친구들이 오기 전까지 한 시간 가까이 만들었습니다. 만들면 "선생님, 이것 봐요." 그러면 "우와, 혜린이가 만들었네." 만들고, 보여주고, 칭찬받고, 다시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혼자서는 어렵지만 약간의 도움으로 해낼 수 있는 영역을 근접발달영역이라고 부릅니다.
자석 블록은 혜린이가 '붙이기만 하면 성공하는' 영역에 맞춘 놀잇감이었던 셈입니다. 퍼즐은 쉬운 것부터, 그림은 자유롭게 끄적이는 것부터, 신발은 벌려주는 것까지만 도와주고 발을 넣게 하는 식으로 환경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은 '대신 해주는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해볼 수 있게 만드는 도움'이고, 아이가 익숙해지면 그 도움을 서서히 거두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아이의 어려움을 먼저 살펴보세요
아이가 "나는 못해"라고 말할 때는 무조건 "할 수 있어"라고 말하기보다 먼저 어려움을 살펴주세요.
"잘 안 돼서 속상했구나." "어떤 부분이 어려워?" 이렇게 마음을 받아준 뒤, 아주 작은 부분을 함께 찾습니다. "엄마가 여기까지만 도와줄게. 나머지는 네가 해볼래?"
"이 조각은 어디에 들어갈까?" 중요한 것은 '어려웠어도 나는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경험이고, 부모가 자기 실수 앞에서 "아, 이 방법은 안 되네. 그럼 이렇게 해볼까"라고 말하는 모습도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2학기가 되자 혜린이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작은 경험들이 쌓여 2학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혜린이에게서 "나는 못해"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림도 달라졌는데, 어른 눈에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그림이었지만 어느 날 혜린이가 그림을 들고 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잘했죠?" "어머, 혜린이가 또 멋진 작품을 만들었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렸을까? 궁금한데?" 그러자 혜린이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토끼가요. 산에 가서요……." 그림이 얼마나 잘 그려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혜린이는 이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을 즐겼고, 예전처럼 시작 전에 "나는 못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은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 앞에서도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이면서 생기기도 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편안하고 즐거워할까?"를 찾는 것이고, 그 잘하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범위를 넓혀주는 것입니다.
혜린이 역시 소꿉놀이에서 시작해 점토로 요리를 만들고 자석 블록으로 마음껏 만들면서 "내가 해볼 수 있다"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잘 안 돼도 다시 해볼 수 있네" 같은 작은 경험을 하나씩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이가 스스로를 믿기 시작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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